

시간은 오후 7시. 눅눅한 저녁이었다. 가을이라기에는 지독하게 추운 날씨는 그대로 이불 속에 들어앉아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을 해야 할 시간은 아니었다. 물론 제가 있는 곳이 보다 불법적인 일로 나아갈 가능성이 아주 많은 불량배들 집단에 있다고 해도 아직 미성년자였다. 왜 이런 투정을 부리냐면, 그는 지금 집 앞까지 손수 찾아와 서류를 건네주는 제 앞의 사람 때문이었다.
"산즈, 이것 좀 결제받아와."
"...지금이 몇시인지는 알아?"
"급해."
왜 이런 저녁에 이런 거 시키는 거야? 나한테 올 시간에 그냥 대장한테 찾아가라고. 짜증났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불만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을 뿐이었다. 코코는 그런 내 태도를 보고도 설명하기는 커녕, 절대 서류 보지 말라면서 억지로 내게 서류를 안겨주고 사라져 버렸다. ...뭐야, 저거? 어이가 없었지만 손에는 서류가 들려있었고 코코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여간 꼭 이럴 때만 빠르지. 조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긴 산즈는 이내 서류를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가 나갈 채비를 했다. 코코의 말을 들어서 안 좋은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그래도 돈 버는 기계니까 이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 산즈는 비척비척 옷을 갈아입고 무쵸를 찾으러 나섰다. 무슨 이유라도 있어야지 내가 이 저녁에 고생하러 나갈 보람이 좀 있을텐데. 뭐, 이를 빌미로 집회가 해산하고 나서 대장 얼굴 한 번 더 보는거지만.
오늘 안 그래도 대장은 무슨 일이 있다고 나갔다. 기존 천축과의 일이라고 하던데. 원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과 지내던 대장인만큼 오늘은 정말 뺄 수 없는 일이 있어서 나간 것일테다. 말 잘 듣고 충성스러운 부대장으로써 물어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왜 나는 두고 가는지. 사실 천축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천축에도 자신의 자리는 아직 없는 것인지.
이해는 한다. 아무리 천축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직 오래 되지도 않았고, 그저 굴러들어온 돌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러운 것은 서러운 것이다. 대체 날 빼놓고 뭘 하려는 거지? 궁금했다. 내가 가면 안 되는 일일리는 없을텐데. 나도 천축인데. 서운하다고 해서 괜히 애처럼 떼쓰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안다. 그냥 따라가면 된다. 어짜피 배신자를 잡아내는 것이 5번대였고, 그래서 미행은 익숙하니까. 때로 비밀을 찾아낼 때에는 물어보는 것보다 따라가서 급습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아니까.
아, 찾았다. 익숙한 대장의 두상을 보고 숨죽여 따라가며 산즈는 다짐했다. 어디 한 번 가 보시지. 나도 몰래 따라가서 대체 나 없이 할 말이 뭔지 한 번 들어나 볼테니까.
----------
그러나 꽤나 강하게 다짐한 것과는 별개로 그 결심은 쉽게 깨져버렸다. 분명 대장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알아챈 후에는 늦어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모르는 곳이었고,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 어라. 길을 잃었나? 아니, 이 근방에 내가 모르는 길은 없는데. 당황하고 있으니 벌써 대장이 멀리 가 있어서 서둘러 따라갔다. 뭐, 있다가 같이 돌아오면 되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던가? 싶은 곳을 따라가며 몇 번을 지나치고 나니 근처에는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문득 차가운 바람이 스쳐지나가면 온통 붉은 빛 등불이 흔들렸고 그 사이를 온갖 것들이 채우고 있었다.
인간이라기에는 너무 이형적인 것들. 만약 내가 비위가 약했다면 바로 비명을 질러버릴 것만 같은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었다. 백귀야행 같은 것을 믿어본 적 없으나 저절로 그 단어가 생각날 정도로 각양각색의 것들이 있었다. 일부는 떠다니고 있었고. ...이게 뭐지?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대장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점점 무언가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쉽사리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 틈에서 문득 대장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대장을 놓치면?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온 몸에 차올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몰래 따라가던 것도 잊어버리고 저도 모르게 그대로 달려가 무쵸의 옷자락을 잡았다.
"대장...!"
"산즈...? 너가 왜 여기에 있는거냐."
"코코가 이거, 결제받아오라고 시켜서..."
"...괜한 짓을 했군."
대장은 잠시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잔소리들. 오늘은 약속이 있다고 했지 않냐. 중간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왜 끝까지 따라온거냐. 왜 굳이 저녁에 받았다고 저녁에 따라올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냐. 등등. 솔직히 조금 억울했다. 나라고 여기까지 들어올 줄 알았나? 내가 아니라 급하다고 한 코코 잘못 아닌가? 그럼 나한테 어디 가는지 들키지 말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게 티가 났는지 대장이 깊게 한숨 쉬었다.
"그래서 저 어떻게 합니까."
"..."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따라가면 안됩니까?"
대장은 내가 정말, 가끔씩 이상한 일을 벌인다며 골치아픈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누구인가. 기량도 배짱도 남들의 두배이다. 가라고 해서 여기서 물러선다면 그 이름이 아깝지. 내 청록색 눈이 불만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대장은 직감한 것 같다. 여기서 떨어트린다고 해도 내가 따라올 것임을.
"...아무 짓도 안 할 수 있겠어?"
"네."
"놀라서도 안 되고, 처음 보는 티를 내서도 안 되는데."
"저 그런 거 잘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보라. 이 말본새를. 무조건 따라온다는 뜻이 잘 전해졌길 바란다. 여기서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고, 아는 사람은 대장뿐인 나를 어떻게 두고 가겠어? 대장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는 위험한데. 하지만 혼자 다니는 것이 더 위험하다. 지금이야 아직 시간이 남아서 괜찮다고는 쳐도 잠시 후에는... 차라리 같이 다니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군. 중얼거리는 말이 들렸다.
"...결벽증인 거 알지만 조금만 참아라."
네, 라고 대답하기 무섭게 대장은 근처 지나가던 작은 여우 요괴를 붙잡았다. 참기 힘들면 눈 감아도 괜찮고. 라는 말에 눈도 꼬옥 감았다. 뚝.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축축한 뭔가가 흘러내렸다. ...눈감길 잘한 것 같다. 기분 나빠. 머리 위로 흘러내리는 것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아서 더더욱. 요괴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인간과 별반 다름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옷자락을 붙잡고 닦아내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싸움 중에는 피를 아무리 뒤집어써도 상관 없다지만 싸우지도 않는데 이런 질척한 액체를 묻히는 건 정말 최악이다. 조금만 참으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냥 닦아냈을것이다.
다행히 체감 상 금방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싶어서 살짝, 아주 살짝만 눈을 떠 보니 분명 액체였을 무언가는 연기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붉은색 연기라니. 이상하지만 이 붉은 조명 가득한 거리에서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당당하게 죽여도 괜찮나? 싶지만 대장이 아무 말 없어서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시체도 날아간건가, 드러난 대장의 손은 빈손이었다. 다만 대장에게서 무언가가 달라졌다. 뭐지? 싶어서 샅샅이 뜯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바뀐게 없었다. 다만 그 눈은, 눈만은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게 새파란 색이었다. ...어? 라고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기 전에 머리에 무언가가 씌워졌다. 대충 더듬더듬 만져보니 여우 가면인 것 같았다.
"이거 뭡니까?"
"쓰고 있어. 조금은 사람인 걸 숨기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
대장은 손을 뻗어서 줄을 제대로 조여주었다. 나를 위해 가져왔던 가면은 아닌지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인가, 시야가 차단되어서 보이는 것이 적어지자 확실히 좀 안정이 되었다. 이래서 경주마들 눈 옆을 가려주는 건가봐. 안 보이니까 좀 나은 거 같기도 하고.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 대장이 눈높이를 맞춰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사람인 거 티내지 말고, 절대 떨어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습게도 그 말을 하는 대장의 눈이 너무 파란색이라서, 새파랗게 빛나는 그 눈이 사람답지가 않아서 실감이 확 났다. 내 앞의 사람, 아니, 대장은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곳에서 마주한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어쩐지 어색했다. 귀화가 타오르는 듯한 눈은 내가 알던 대장과는 약간 달랐기에. 하지만 이제와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던가. 나는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대장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무래도 앞을 보고 걷기보다는 바닥을 보고 걸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는 도중 튀어나온 개구리 때문에 비명을 지를 뻔 해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아니 퍼스널 스페이스 몰라? 아무리 나라도 개구리가 그렇게 얼굴에 갑자기 확 다가오면 놀랄 수밖에 없다. 다행히 대장이 제대로 막아주었지만, 덕분에 펄럭거리는 소매 사이로 대장의 팔을 볼 수 있었다. 그 팔에는... 광석이 박혀 있었다. 품이 넓은 소매라서 몰랐었는데. 아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자연적으로 돋아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박힌 것 처럼 돌조각이 박혀있는 주변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애초에 자연적으로 박혀있는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만. 어쩐지 단단하더라. 전에 팔씨름 하고 문득 궁금해져서 대장의 팔을 툭툭 쳐 본 적이 있었는데 거의 돌이나 마찬가지었다. 그럼 대장은 돌과 관련된 요괴인걸까. 생각을 흐름대로 흘려보내고 나니 어느새 이상한 문을 지나쳤고 그 안은 연회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축의 간부들이 모여서.
어쩐지 현실성이 없어서,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부러 현실이 아니라 이를테면 상상이나 꿈, 같은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내 예상보다 나는 침착했다. 그게 조금 놀라웠다. 뭐, 무슨 일이 있으면 대장이 어떻게든 해 주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마음가짐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가 이런 것들을 보고 진실이라고 생각하겠어. 안 그래? 그저 잘 만들어진 영화 분장을 보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이타니 형제였다. 당연했다. 어딜 가나 화려하게 꾸미는 둘 답게 오늘도 잘 꾸미고 왔으니까. 상대적으로 단정하게 입은 형 쪽은 피부에 검정색 비늘이 돋아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혀는 뱀처럼 갈라져 있었다. 아마도 뱀 요괴겠지. 그러나 형제라면서 옆의 동생 쪽은 뱀이 아니라 거미 요괴인 것 같았다. 등 뒤에 거미 다리가 두 쌍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거미의 다리라기에는, 견갑으로 둘러싸인 꼴이 단단해보였다. 정말 가만히 있질 못하는지 등 뒤의 다리로 리듬을 타며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자면 꽤나 흥미로워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쁜 다리가 아니라 정말 가시가 나 있는 뾰족한 견갑에 결코 사람의 관절이 아닌 것이 뚜둑, 소리를 내며 꺽어지는 걸 본다면 누구라도 꺼리게 되겠지. 벌레는 질색이여서 그 꼴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마다라메 시온이라고 했나, 그 사람은 늑대인간이었던 것 같다. 몸에 복슬복슬한 털이 나 있었다. 옆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는 모치즈키 칸지는 팔이 세 쌍이 달려있었다. 세 쌍의 팔로 음식을 먹으면서 장난처럼 옆의 시온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어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안 아픈가, 저거?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시온이 이빨을 드러냈다. 날카롭게 세워진 이빨은 결코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잘못 물리면 정말 끝장나겠구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광견이라는 그의 이명이 생각났다. 조금 다른데. 광견은 죽을때까지 놓치 않아서 광견이라고 하지만, 저건 단번에 뭐든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목 쯤은 쉽게 물어뜯기겠지. 물린다면 어디를 물어도 단번에 너덜너덜해질 것 같다. 손목 같은 부위는 아예 뜯어버릴수도 있을 것 같은 이빨이 무섭지도 않은지 세 쌍의 팔을 이용하여 헤드락을 걸고 강아지처럼 쓰다듬고 있었다. 여기서 나만, 무서워하는걸까... 다들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어이없어서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뭐라뭐라 이야기하다가 내 쪽을 보길래 모른 척 대장을 끼고 돌았다. 그러지 말걸.
반대쪽에는 키사키와 한마가 있었다. 솔직히 겉보기로 위협적인 것은 다른 이들이 더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둘도 만만치 않았다. 키사키의 몸, 얼굴, 다리, 온통 눈이 있었다. 눈이 100개 쯤은 달린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한걸음 떨어져서 계속 온갖 곳에 있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 시야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소름끼쳤다. 눈이 뜨여졌다 감기는 사락,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뒤에 서 있는 한마도 이상했다.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었으나 주변이 유독 어두웠고 그 아래 그림자가 이상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뭔가, 그나마 이 중에서는 제일 덜 무서웠으나 그래도 만만히 보지는 못했다. 검은색 무언가에 자칫하면 잡아먹힐 것 같았다.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거지...? 옆에 있는 대장은 놀랍지도 않은지 나를 신경써주고 있었다. 이게 익숙한걸까? 그렇겠지. 보아하니 1,2년 같이 지낸 건 아닌 것 같아보이니까. 이래서 나를 두고 오려고 했던 걸까. 확실히, 자기가 요괴며 다른 간부들도 전부 요괴라서 인간인 나를 데려갈 수 없다고 말했으면 나는 안 믿었겠지. 그냥 나를 끼워주기 싫어서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실체를 보고 나니 왠지 뒷걸음질 치고 싶어졌다. 나는 절대로 이들 사이에 섞일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오직 대장의 옆이었다.
그러고보니 코코는? 그렇게 돈을 잘 벌어오는 코코야 말로 돈귀신이니 요괴일 법 한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돈을 만들어내는 능력만 보면 제일 요괴 같은데. 그나마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요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고 생각하면, 한 사람이라도 인간이 있는게 안심이 된다. 코코가 없어서 다행이네. 물론 저녁에 서류를 맡긴 건 잘못했지만. 정말 대체 어쩌다가 이 곳에 끌려온건지. 전부 코코 잘못 아냐?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자니 검은 하늘을 가르고 뭔가 날아오고 있었다. 분노와 공포가 섞인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놀란 척 하면 안 되었다. 놀라지 않기, 사람인 척 티내지 말기, 대장 곁에 있기.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옆에 다가온 놈 때문에 흠칫 놀라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쵸, 누구 데려왔네?"
커다란 검은색 까마귀 날개를 펄럭거리며 뒤쪽에 붙은 건 카쿠쵸였다. 저도 모르게 놀라 움찔했지만 가까스로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안 그래도 긴장 중인데 뒤에서 놀래키는 건 또 뭐야. 진짜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 대장 뒤로 숨어서 놀란 만큼 속으로 뭐라뭐라 했다. 그렇게라도 괜찮은 척 하지 않으면 정말 기절할 것 같았으니까. 대장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미 시선은 이쪽으로 쏠렸는데. 등 뒤가 따끔거렸다. 이대로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젠장, 짜증나. 아니, 짜증나는 게 아니라 지나친 공포가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들키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대장에게도 민폐인데. 인간이라고 쫓겨날까. 아니, 애초에 요괴들일 거라고 누가 아냐고. 애써 뒤를 쳐다보지 않고 대장 등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카쿠쵸가 고개를 숙였다. 등 뒤의 시선도 사라졌고, 대장도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나 혼자만 뒤돌아 있을수는 없기에 나도 몸을 돌려,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뭔지는 몰라도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궁금증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오늘 죽는 것은 여우의 탈을 쓴 나일 것이다. 꼭 두 눈으로 봐야만 믿는 내 안 좋은 버릇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서 본 것, 은... 문득 바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떨어지고, 떨어져서 그대로 바닥에 부딪혀 버려서, 그대로 죽어버리는 환상이 떠올랐다. 저게, 저게 뭐야? 아까 지나친 공포가 분노로 발현되었다고 했었나, 이건 그런 마음조차도 들지 못하게 하는 폭력이었다. 아니, 폭력인가? 그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불길하고 불안해서, 불가해한 무언가를 마주친 것처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그것은 이 자리에 있었다.
모두의 경배를 받으며 걸어오는 것은 이자나, 천축의 총장. 그는 그 누구보다 인간다웠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다른 요괴들은 눈이 빛나는 것에 비해 그의 눈은 평범했고, 그의 외형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건 절대 인간이 아니었다. 저런 게 인간일 리 없었다. 저건, 저건 대체 뭐지?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도망치고 싶어, 가까스로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주저앉지도 않았으나 그것이 한계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대장의 옷자락을 붙잡으면 괜찮냐고 물어봐주었지만 대답할 여력은 없었다. 어떻게 저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지?
보라색은 귀족의 색이기도 했지만, 죽음의 색이라고도 했던가.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옅은 보라색의 눈이 만인의 위에 올라설 정도로 고고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어째서 이렇게 섬뜩하게 보이는걸까. 천천히 다가오는 그에게 저도 모르게 가면을 제대로 만졌다. 차라리 보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나 어느새 눈 앞에 다가온 그의 눈을 마주 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감한 눈에 보이는 건 여우 가면을 쓴 남자. 어째서인지 그 여우 가면을 쓴 사람의 눈이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분명 눈을 의심할 만 했지만 그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시끌벅적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알아챈건지 옆에서 어느새 다가온 카쿠쵸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제 왕의 행동을 보조해주기 위해서일지도. 아니, 사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포 때문인가, 감각이 극대화 되어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인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걸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고, 관심을 두지 않기도 했다. 걱정하기도 했고 또한 이자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은 그들 전부,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위험한 요괴였다는 것이었다. 왜 아까는 몰랐지 싶을 정도로 위협적인 기운들. 나를 주시하는 그 무형의 힘을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들이 무엇인지. 고요한 가운데서 제대로 본 그것들은 요괴라는 말로 전부 표현할 수 없었다. 전에 있었던 여유가 모조리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산즈 하루치요가 아니라 나약한 어린애 하나였다.
그러나 새로히 인지한 것들에 의해 안 그래도 정신이 없었던 나의 신경은 곧 내 앞의 그에게로 전부 쏠렸다. 나를 관찰하던 그가 이윽고 슬 웃었기 때문이다. 분명 웃음임에도 어쩐지 그다지 안도감이 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소름끼쳤다.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압력. 손 뿐만 아니라 몸도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 나를 알아챈 건지 대장이 앞서 뭔가 말하려고 했다. 아니, 했었다. 앞에 있는 이자나가 손을 들어 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는 손을 들어 대장의 행동을 막았고, 웃었다. 그 휘어지는 눈과 흔들리는 귀걸이와, 벌어지는 입과 조만간 나올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불길했다. 죽을 것만 같았다. 불길하고 불길해서 움직이지조차 못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도망갈 수 있지? 저항할 수 있나? 어디로, 어디로 도망가야, 도망갈 길은... 어디지? 반쯤 패닉 상태로 뭔가 일을 저지르기 직전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 건.
"무쵸."
"이자나. 그러니까 이건,"
"네가 아끼니 봐주는 거야."
"...그래."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괜찮아."
"배려해줘서 고마워. 먼저 들어가볼게."
봐준다고? 돌아가도 좋다고? 배려? 그 말을 듣고 해석할 이성 정도가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남아있었나? 공포 때문에 몸이 굳어져서, 머리 속으로 이리저리 살 길을 찾아보았지만 어떠한 길도 전부 다 죽음이 기다리는 것만 같아서 멈춰있었던 게 아닐까? 배려, 배려라고 했지. 그 말대로 그 무형의 압력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평범한 물고기라고 하기에는, 뼈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것이 보이고 난 이후에는 점차 두러움이 줄어들었다. 몸의 떨림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 다만 눈물이 뚝뚝 흐르는 게 느껴졌다. 여우 가면의 안쪽에 떨어져서 바깥으로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그게 그렇게 다행이었다. 다행이어서, 눈물이 났다. 어쨌든 눈 한 번 깜빡일 시간도 없이 날 죽일 수 있는 상대가, 먼저 그러지 않겠다는 재스쳐를 취해서일까. 솔직히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지만 그 때에는 오직 안도감만이 들었던 것 같다.
대장이 대신 대답할 즈음에는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고, 가볍게 인사하는 대장을 따라 인사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알고 인사한 게 아니라 옆의 대장이 인사했기에 따라한 것이나 마찬가지었다. 가자, 산즈. 얼타고 있는 나를 잡아끌면 저 멀리서 대장 보고 잘 가라며 인사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음에는 옆의 것도 같이 놀자나 뭐라나. 내가 미쳤다고 너희랑 놀겠냐. 무서움이 가시고 난 자리에는 어딘가 억울함이 가득차서 울컥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인사하는 이들은 없었으나 새삼 인사 받지 못했다고 해서 소외감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오히려 신경쓰지 않아서 좋았다. 이자나의 옆에 물고기가 떠다닌 후로 그 비이상적인 공포감이 어느 정도 가셨기 때문에 필사적이라면 필사적으로, 대장을 따라갈 수 있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돌아오는 길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짧았던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걷다 보니 아는 골목길이었고, 돌아보니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대장의 팔은 멀쩡했다. 돌 같은 것은 가루조차 보이지 않았다. 피부도 아프게 달아올라 있지 않고 그저 멀쩡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바닥을 보고 가면을 돌려주었다. 잘 썼습니다. 아니다. 가서 자. 눈물 자국이 티가 났을 것 같은데, 그걸 생각하고 걱정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평소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들어갈 때까지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주저앉았던 것 같다. 그대로 기절하고 싶었는데, 결벽증 탓인지 몸에 있는 불길한 것들을 씻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까이서 본 탓일지는 몰라도 온 몸이 불결한 것 같았다. 겨우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샤워실에 들어가서 곧바로 물로 씻어내렸다. 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마저 씻겨내려가며 졸린 탓일까, 자꾸 생각이 흘러간다. 사실 없었던 일 아닐까? 내가 긴 악몽을 꾼게 아닐까? 현실적으로 그럴 리 없잖아. 술을 마신 적은 없는데. 혹시 코코가 서류에 뭔 짓 한 거 아냐? 받은 사람이 마약에 중독되도록. 요즘 마약은 공기 중에 뿌려서 흡입이 가능하다던데. 실없는 생각을 하고 나니 그나마 조금 더 안심되는 것 같았다. 더는 그것들이 없었다. 그저 익숙하고 깨끗한 나의 집일 뿐이었다. 그래, 거짓말이야. 꿈이야. 내가 잘못 본 거라고. 어쩌면 분장이었던 게 아닐까. 내가 느낀 건 전부 거짓이고 그냥 놀기 위해 분장한 걸 제멋대로 착각한 게 아닐까. 나는 예민하고 결벽증이 있으니까 어쩌면 더럽다고 생각한 걸 무섭다고 생각한 걸지도 몰라.
대충 던져둔 옷을 제대로 정리하려고 옷을 개는데 검은 무언가가 떨어졌다. ...까마귀의 깃털이었다. 믿을 수 없어서 손으로 집어들었더니 그대로 불타 사라져버렸다. 붉은색으로 불타고 남은 자리에 회색 재라니. 꼭 누군가의 눈 색이 생각났다. 이 깃털의 주인일 누군가. 그게 너무... 너무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동시에 본능적으로 진짜구나. 라고 생각했다. 증거였던 재를 다시 만져보려고 했더니 한 번 더 불타 사라졌고 집에 불은 붙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더 깊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가벼운 생각을 하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갔다. 아니야, 봐. 사라졌잖아. 꿈이겠지. 잊어. 잊어, 산즈 하루치요. 오늘 마주했던 그것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필름이 끊기듯 의식이 멀어졌다.
----------
아침에 눈 떠 보니 어제 충격받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와 자 버린 탓에 어제 벗어둔 옷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서류. 어쨌든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류는 받아와야 한다. 늦었다고 뭐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변명하기에도 어렵단 말야. 어제 안으로 결제 받으려고 대장을 찾아갔더니 이상한 곳으로 떨어져서, 이상한 것들을 보고 왔다고 하면 그 이성적인 코코가 퍽이나 믿겠다. 애초에 걔는 왜 저녁에 이걸 준거야?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서도 산즈는 궁시렁대며 나갈 채비를 했다. 뭐 이상한 일은 아닐테니까. 어쩌면 한 번 더 대장을 보고 자기 눈으로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대장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리면 졸린 듯 하품하며 나오는 대장. 마주한 대장의 눈은 어제처럼 빛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서류요. 그래. 대장은 서류를 받아들고는 읽어내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큰일이었나...? 정말 어제 받아갔어야만 하는 중요한 서류였었나... 큰일일지도. 문득 불안해져서 조용히 대장의 눈치를 보고 있자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류철에 붙어있던 볼펜으로 뭔가 쓰기 시작했다.
정말 어제 받았어야만 하는 서류였나? 하지만 어제는 정말, 서류를 내밀 수 없었다. 그런 일을 겪고 멀쩡하게 서류를 내밀 수 있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간에. 그러고보니 어제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 때 정말 대장 아니었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가정들 전부 다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가정들 뿐이라 조금 하얗게 질렸었다. 진짜 어떻게 살아돌아온거지. 조금 감탄했다. 아무튼, 내가 살아돌아올 수 있던 이유 중에는 분명 대장이 있을 것이다. 대장이 아끼니까 봐준다고 했으니까...
"대장.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운을 띄워보았으나 그 말을 들은 대장은 손이 멈췄다. 혹시 괜한 말을 한 건가 싶었는데 대장이 잠시 고민하다 꺼낸 말은,
"무슨 소리 하는거냐, 산즈."
"네?"
"나는 어제 드라이브 가서 널 본 적이 없잖아."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지? 내가 어제 본 게 대장이 아니었다고? 머릿속이 새하얘였다. 혹시 그때 본 게 대장이 아니라 닮은 요괴였나? 아니, 근데 그러면 날 알 리가 없을텐데? 무슨 소리 하는거냐고 당장에 따지고 싶은 것은 나였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말을 정리하느라 복잡한 표정을 한 나에게 서류를 안겨주어서 말할 수 없었다.
"우선 이거 코코에게 가져다 줘라. 바쁜 일 같아 보이던데."
평소라면 좀 더 느긋하게 가라고 했을텐데 정말 급한일인지, 아니면 대답하기 곤란한 걸 물어볼거라 생각한 건지 대장은 나를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이게 뭔. 평소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 와중에 문이 닫히기 전에 본 대장의 눈이 너무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두운 곳이 아니라 밝은 곳에서도 확연하게 빛나는 눈. 다시 문을 두드리면 대장은 분명 열어주겠지만 어쩐지 무서웠다. 그래서, 그래서 정말 바쁜 일인가봐, 하고 서류를 코코에게 먼저 가져다 주기로 했다. 머릿속 한 켠에서 그럴 리 없지 않냐고, 내가 본 것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소리조차 무시하고서.
----------
의심 반, 진심 반으로 문을 두드렸던 것 같다. 아직도 어젯밤 일은 꿈 같은데, 꿈 같지가 않아서. 복잡한 심정으로 코코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고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여상하게 나를 반겨주는 코코는 다를 바 없어서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익숙하게 서류를 받고, 아, 역시 이런 반응인가, 하고 혼자 중얼대더니 책상 위로 휙 던졌다. 저거 저렇게 던져도 되는거야? 어쩐지 억울해졌다. 어제 저거 받으려고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안다면 절대 저렇게 대할 수 없을텐데...! 문득 열이 나서 뭐라고 따지려다가 할 말이 없어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데, 코코의 말이 들렸다.
"그런데 산즈, '연회'는 잘 다녀왔어?"
...연회?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이상한 빛이 일렁였다. 여기는 분명 실내인데, 햇빛이 들어올리도 없는 곳인데. 기이한 무언가가 있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게 비늘에 반사된 빛 같았다. 그럴리 없잖아, 코코는 인간, 일텐데. 그러나 다음 순간 무언가를 보고 나는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검은색 눈을 가진 코코라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눈은 확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타오르고 있었다. 기이한 불꽃 때문에 이제야 볼 수 있는 코코의 동공은, 파충류의 그것처럼 인간답지 않게 길게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었다. 마치 어제 본 이들의 눈처럼. 성격 나쁘게 웃으며 혀를 내미는 코코의 혀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문득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end.
----------
해설:
산즈는 자신이 순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정도는 순수한 인간이 아니며, 영감이 있다. 아니었으면 애초에 무쵸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중간부터 놓친다. 그 때 산즈는 무쵸에 집중해서 몰랐지만 꽤 많은 길을 이상하게 건너왔으므로 사람이었다면 어느순간 막다른 길에 막혀서 무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산즈는 길은 제대로 몰랐어도 영감을 가지고 있었고, 무쵸라는 명확한 대상을 따라간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무쵸를 따라 갈 수 있었다.
가장 처음에 무쵸를 따라가면서 중간까지도 다른 요괴들에게 들키거나 먹히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1. 코코의 가호? 같은 것 2. 무쵸 등 다른 인간의 탈을 쓴 요괴와 가까이 있어 보통 인간이라기에는 요괴 느낌이 난 것 3. 산즈 본인의 영감 이 세가지가 합쳐져서 대충 인간 냄새가 많이 묻은 요괴<< 정도로 보였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다.
코코는 산즈에게 이들이 요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이유는 코코도 나름 같이 팀을 옮기면서 산즈랑 오래 갈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에. 코코도 돈을 잘 번다 -> 시세를 잘 예측한다-> 때문에 산즈와 어쩌면 오래 갈 수도 있다고 예측함.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황을 잘 봐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슷한 산즈의 잠재 능력 또한 볼 수 있었다. 오늘 연회가 있었을 때 안 간 이유는 일해서. 원래라면 코코가 같이 데려갔을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산즈가 코코보다는 무쵸를 더 의지하기도 하고 해서 어짜피 일 때문에 못 가는 김에 무쵸에게 맡겼다.
서류는 별 내용 없는데 처음에 서류를 받아보지 않아도 무쵸도 대충 코코가 아... 산즈에게 알려주려고 하는구나, 하고 눈치 챘을 거 같다. 원래대로라면 데려다주려고도 생각했었는데 무쵸와 산즈는 둘 다 자신의 자리가 없이 외로운 위치였으므로, 자기가 산즈를 원래 자리에 가라고 하면 산즈가 서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가 아니어도 산즈가 있을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천축이 그의 둥지가 되길 바랬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천축이 요괴라는 것 또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쓴웃음 지으면서 데려갔다. 처음 만났을 때 지금이야 아직 시간이 남아서 괜찮다고는 쳐도 잠시 후에는... << 무쵸의 이 대사는 코코의 보호막 시간을 뜻하는 것.
나중에 서류를 보니 정말 별거 아닌 일이라서 솔직히 조금 짜증났을 것 같다. 그때 그 산즈답지 않게 무서워하던 걸 봐서 나한테 맡기지 말고 본인이 하지 그랬냐고 적어서 산즈에게 맡겼다. 요괴가 아닌척 거짓말한 이유는 그 때 이자나를 보고 산즈가 너무 무서워해서 그냥 모르는 체 해준 것. 그 때 산즈가 가면 돌려주고 나니 그 속에 보이는 게 눈물에 푹 젖은 얼굴인데, 자기도 자기가 운 지 모르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해서 정말 무서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덜덜 떨리던 손이나 굳어진 몸이나, 억지로 손 잡고 끌고 다시 집으로 오는데 손이 너무 차가워서 걱정했었다.
산즈가 가면 쓰고 가다가 개구리 뛰쳐 나와서 비명 지를 뻔한 것->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 생각하면서 씀
이자나가 인간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새어나올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인간으로 참석했다. 다른 요괴들의 눈은 기본적으로 빛나지만 이자나는 인간 모습으로 참여했으므로, 눈이 빛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산즈는 이자나의 눈에 비친 자신의 눈이 빛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즉 산즈 또한 순수 인간은 아니라는 뜻.
산즈의 영감은 누군가를 보는 것에 특화되어있었고, 다른 이들은 이자나를 봐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산즈만 유독 무서워한 이유는 산즈가 이자나의 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에 가깝게 살아왔고 순수 요괴는 아니다 보니 거의 처음 느끼는 그런 강대한 힘에 더 무서워 한 것도 있다. 산즈가 애초에 순수한 인간이었으면 이자나도 그리 쉽게 봐 주지 않았을텐데, 산즈가 공포 때문에 능력을 계속 본능적으로 쓰고 있으니 이것봐라? 싶어서 살려준 것. 아무래도 다른 이들과는 달리 보다 더 예민한 쪽인 것 같으니 본인을 좀 더 숨겼다. 물고기의 형태로 나타낸 것은 그의 힘 일부를 덜어낸 것으로, 그렇게 하고 나서야 보통 요괴처럼 줄어들어 산즈가 진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카쿠쵸가 산즈 옆에 섰던 건 산즈가 인간이라서 죽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자나가 사형선고 내리면 집행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무쵸한테 가려져서 이자나가 잘 안보이기도 하고, 호의를 가지고 다가간 옆에 산즈가 무서워하는 걸 가까이서 보니까 느낄 수 있어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서 있던 것. 물론 산즈에게는 그게 더 위협적이었지만.
그 때 이자나를 보고 극도의 공포로 인해 능력이 일부 깨어났다. 그래서 시간이 느리게 가고 주변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렇기 때문에 전에는 몰랐던 다른 천축 간부들의 강함을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새삼 여기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눈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갑자기 모르던 것들을 인지하게 되었으니 그걸 봤던 눈이 아프고, 그걸 받아들이기 위해 머리가 아팠던 것이다.
사실 각성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 산즈의 결벽증은 이 것과 관련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만한 일들은 예민하게 감지하는 바람에 결벽증이 생긴 것이다. 나는 예민하고 결벽증이 있으니까 어쩌면 더럽다고 생각한 걸 무섭다고 생각한 걸지도 몰라. << 이 말의 반대로 예민하니까 무서운 것(혹은 부정한 것)을 캐치하고 그걸 더럽다고 생각해서 결벽증이 생긴 것.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자각은 했으나 필사적으로 부정했었다. 그러나 코코까지 요괴라는 것을 눈치채고 반쯤 패닉 오기 직전. 언젠가는 받아들이고 요괴라고 무서워하지 않고 대들 깡과 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지금은 갓 능력을 깨달은 어린애나 마찬가지일 것. 훗날 자기 능력 갈고 닦아서 칼 휘두르면서 썰어버린다고 하고 다니는데 가끔 하이타니가 그때 무서워하던 걸로 엄청 놀릴 것 같다. 카쿠쵸도 아직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이므로 산즈에 대해 유감은 없을 거 같은데(아마) 그래서 처음에 다가가서 놀라게 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했다.